서점을 구경하다 갑자기 교양서적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교양 베스트셀러 항목 쪽으로 걸어갔다. 맨 위에 올려진 책들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얼굴이 들어간 책 띠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태성 선생님이었다. 최태성 선생님은 내 마음속 은사로 자리 잡고 계신 분이다. 고등학생 시절 어떤 한국사 강의를 들을지 몰라 헤매던 와중 기대 없이 들어간 EBS에서 오히려 빛을 발견하게 해 준 분이다.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여야 한다"는 말씀으로 그 시절 내 마음을 울렸던 분. 역시나 그 내용도 이 책에 쓰여 있었다.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계산대로 향했다.
난 역사 지식에 참 약한 사람이다. 어릴 때는 역사 만화책을 읽었고 수험생 시절에도 한국사 강의를 열심히 듣고 좋은 성적도 받았지만, 현재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세종대왕과 이순신 정도밖에 없을 지경이다. 내 기억력이 문제일지 공부 방법이 문제였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역사를 암기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이 책은 달랐다. 정확한 연도가 중요할 게 아니라, 인물과 사건으로부터 배울 자세를 강조했다. 역사에서 그런 걸 살핀 적은 처음이었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길을 걸었는지, 또 그들의 선택이 역사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생각해보면 비로소 제가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는 본문 중 한 문장은 책을 읽고 난 후 나에게도 든 생각이었다. 여러모로 잡생각이 많던 요즘이었다. 매달 받는 월급은 일상을 즐기기엔 충분한 금액이었지만 대단한 무언가를 할 만한 금액은 아니었다. 이 돈을 모아서 어느 세월에 집을 사지? 살 수는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문득 우울했다. 주거의 안정이 인생의 목적일까? 돈을 얼마나 벌어야 행복해질까? 돈이 인생의 목적일까? 분명 아닌 것 같긴 한데, 그럼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으로 잡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최태성 선생님은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와중, 한 학원에서 엄청난 액수의 금액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의 꿈은 돈과 같은 단순한 명사가 아닌, 선생으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는 동사였다. '내 강의는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듣는 무료 강의가 아니라 돈이 있어도 들을 수밖에 없는 무료 강의로 만들겠다'는 인생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이회영 선생의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말을 떠올리며 올바른 선택을 하려 최선을 다하셨다.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문득 회의감에 젖을 때가 있다. '어차피 난 우주의 먼지 같은 존재인데, 왜 이렇게 아득바득 살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의미 없게 느껴지던 날들이 있었다. 역사를 살펴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대로 살아간 분들이 있다. 최태성 선생님은 그들을 '역사를 알았던 사람들',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고 역사의 일부가 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셨다. 뜨끔했다. 어쨌거나 나는 2022년 대한민국의 역사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이었다.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역사의 큰 그림에서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나 하나도 의미 있는 역사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꿈은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뭐가 되고 싶다는 명확한 답은 없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접해본 것이 적어서 그 답을 내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답은 아직도 명확히 내려지지 않았다. 좀 더 역사 속 사람들과 마주하며 그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세계사 책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에게도 역사가 나침반이 되어주고 역사 속 인물들이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