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다이어는 유명한 심리학자다. 수많은 저서 중 들어본 책들은 많았다. 하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는 않았다. 평소 "치유물"로 불리는 자기 계발서 서적을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마냥 느려도 괜찮다느니, 모두가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뿐이라느니 그런 식상한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내 안의 궁금증은 "내가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가 아닌, "궁극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였다.
서점을 거닐며 책을 앞 뒤로 뒤집으며 표지를 구경했다. 내 시선을 사로잡는 문구가 나오길 바랐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 마음을 끌었다고 할 수 있다. '나이, 직업, 재산, 관계까지 그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과연 나는 누구일까?' 그 문장을 읽은 찰나의 순간 내 머릿속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다. 나이와 직업과 재산과 인간관계를 제외하고서의 내 모습을 내가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게 될까?
나는 하루를 알차게 보냈는가에 대한 강박이 심한 편이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 출근 전에 조금이라도 공부해야지'라는 계획에 실패하며 자책하기 일쑤고, 신성한 주말을 멍 때리며 허투루 보냈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우울해한다. 어디라도 나가야 하고 뭐라도 공부를 해야 하루를 가치 있게 보냈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그렇지 못하면 슬프고 화가 났다. 난 내 감정을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감정들은 나 스스로를 가두는 행동일 뿐이었다. 웨인 다이어는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한계를 모르는 사람이 되어라고 강조한다. '왜 하루를 허비했지? 그래선 안 됐는데. 조금이라도 책을 읽거나 공부했어야 했는데!' 이는 나를 가두고 불행에 휘둘리게 내버려 두는 생각이었다. '오늘은 가만히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어. 푹 쉰 김에 일찍 자고 내일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야지.'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문제였다. 모든 생각은 자기 안에서 일어날 뿐이다.
나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가 과연 어떠했는가? 나는 주로 자책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가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심하게 자책하고 채찍질했다. '이런 것도 못 해내는 난 멍청이야'라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돌이켜 보면, 해내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서 오히려 엄청난 성과를 내고 해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전전긍긍했던 부분에서는 오히려 실패를 하곤 했었다. 해내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서는 내 한계를 막지 않고 자유롭게 했었기에, 그리고 전전긍긍했던 부분에서는 불필요한 두려움으로 나를 가뒀기에 그런 결과가 나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취준생이었을 때,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자 강박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새로운 실패를 낳았다. 그 강박이 정점에 달했을 때쯤 생각을 한 번 비우기로 했다. 굳이 취업을 일찍 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인생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좀 더 즐겨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바로 취업에 성공했다. 강박이 내 한계를 가로막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화가 났을 때, 자아에 휘둘리는 사람은 화를 터트리며 모두의 흠을 잡고 사람들에게 소리를 치지만 자아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화를 느끼면 그에 대해 조처를 취한다고 한다. 내 부모님은 전자의 분들이셨다. 물론 평상시엔 매우 좋으신 분들이시지만, 꽤나 감정적이고 성격이 세신 분들이다. 어린 시절 내가 내 분에 못 이겨 화를 낼 때면 닮기 싫은 부분들을 닮아가는 느낌에 굉장히 불쾌했다. 그럼에도 그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먹고 서는 그게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고 쉽게 화나 짜증을 드러내지 않았다. 감정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었다. 그걸 깨닫고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나온다. 감정은 생각의 결과라고. 인지가 일어난 후 감정이 생기는 것이라고. 우리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으며, 감정은 생각에서 나온다.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스스로가 매우 부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어쩌면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험담하며 채찍질해야 더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이룬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이 정도로 기뻐하면 안 된다며 더 채찍질할 뿐이었다. 한 번뿐인 인생, 행복하게 살아가기에도 짧은데 나는 스스로가 행복을 누리는 꼴을 용납하지 않았다. 참 어리석었다. 행복하게 살려면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긍정적이면 현실에 안주하게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긍정은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힘 그 자체였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무엇일까? 내 꿈은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뭐가 되고 싶다거나 뭘 이루고 싶다는 명확한 답은 없었다. 다만 죽음이라는 걸 인지한 순간부터, 내가 죽고 나서도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나를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려면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낀 후 눈을 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뒤 다짐한 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제일 좋은 수단이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두 번째, 4-5년 뒤에는 무조건 외국에 나가야겠다. 한국에서만 살다 가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간직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나는 쭉 외적 동기에 따라 살아왔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SNS에 집착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맛있는 걸 먹거나 비싼 걸 사거나 한 날에는 꼭 SNS 게시물을 올렸다. 내가 이 만큼 잘 살고 있다는 걸 과시하는 것 마냥 말이다. 심지어 인턴에 합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외부의 시선에 목매며 살았다. 한 번은 흔히 현타라 불리는 그 감정이 세게 왔다. 왜 나는 내 성공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이 성공이 남들에게도 성공으로 보일지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걸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 후로는 확실히 마음이 편해졌다. 남들이 어떻게 날 생각하든지 간에 신경을 안 쓰기로 했다. 타인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에는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격차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매스미디어 속에서 살아가면서 이런 과시를 아예 그만둘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이미 평생을 미디어에 노출된 채 살아왔고 나 또한 미디어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확실한 건, 적어도 누가 이 게시글을 봤고 좋아요를 눌렀는가는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내 취미를 찾아가는 중이다. 2n 년을 살아왔지만 내가 뭘 할 때 즐거운지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스스로와의 대화를 좀 더 해봐야겠다고 매일 생각하고 있다. 스스로와의 대화에 가장 좋은 방법은 일기라고들 한다. 나는 다이어리를 꾸밀 만큼 부지런하지도, 매일 일기를 쓸 만큼 하루하루를 인상 깊게 보내고 있지도 않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월기를 쓰는 것이다. 예쁜 다이어리도 아닌 그냥 싸구려 줄 노트에 쓴다. 그럼 기록에 대한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2년 동안 월기를 썼는데 10장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2년이라는 시간을 빠르게 되새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매달 2년 전의 오늘, 작년의 오늘, 그리고 지금의 오늘을 비교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아직까지는 가치관이 자리 잡히지 않았지만 그래도 2년 전의 나보다는 좀 더 자리 잡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년의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긍정적으로 살아가야지.